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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랑, 문학/[광장,청춘], [예스31],[ccmer] 칼럼

[예스31칼럼] 주체와 대상

사랑문학

제목 주체와 대상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에 있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거죽엔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

-신동집 <오렌지>-

 

 


이 작품에 나오는 오렌지는 굳이 오렌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사과도 괜찮고 복숭아도 괜찮다아니굳이 과일일 필요도 없다보통은 이 오렌지를 인식의 대상이라고 설명한다인간이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대부분 감각에 의해서이다눈으로 보기도 하고 소리로 듣기도 하고 냄새나 맛으로 인식하기도 한다이 시의 화자는 오렌지에 손을 대려고 한다그것이 화자가 오렌지를 인식하고자 하는 방법이다그런데 불행히도 오렌지에 손을 댈 수가 없다왜냐하면 손을 대는 순간 그 오렌지는 바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연애를 시작할 때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는 나의 사랑으로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는 것이다그러나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그렇다면 상대방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물론 이 경우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상대방이 불행의 구렁텅이에 매몰되어 사는 것이 안타까워 그에게 그 환경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지만또 그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본다면 그것은 사랑이라 부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무엇이 완전한 사랑일까실은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완전한지를 증명하려고 할수록 점점 본질을 훼손하게 되고 완전함을 잃게 된다우리가 하는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든 늘 부족하며 완전할 수 없다마치 오렌지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서 껍질을 벗겨내고 속살을 까보지만 그럴수록 오렌지는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작품은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본질을 인식하려는 눈물겨운 화자의 노력들이 오히려 그 본질을 훼손시키고 있으며 그것을 위험한 상태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런데 굳이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를 소개하지 않고 신동집의 오렌지를 소개한 이유는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라는 구절 때문이다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는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을 표현하고 있지만그것은 말 그대로 대상일 뿐이다한번도 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다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라는 묘한 구절을 덧붙이고 있다. ‘내가 보는 오렌지에서 인식의 주체는 이고 대상은 오렌지이다화자는 자신이 오렌지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었다그런데 가만히 보니 내가 보는 오렌지’ 즉 화자가 인식하고자 하는 대상인 오렌지가 오히려 주체적으로 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사물이건 사람이건 우리는 가 아닌 것들은 모두 대상화하려는 나쁜 습성이 있다앞서 말한 연애 이야기도 마찬가지다상대방을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은 그 사람을 대상화한다는 말이다대상화의 문제점은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상대방의 생각이나 의사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의 결정만이 중요하다오랫동안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자연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고 결국 전 세계가 자연이 일으키는 거대한 변화에 몸살을 앓고 있다

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연애를 할 때자녀를 양육할 때사회에서의 관계 안에서 그 타인들 역시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가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이 지나칠 경우 자녀의 삶의 주인이 자녀들 자신임을 인정해야 할 시점을 놓치기 쉽다부모가 보기에 예쁜 옷을 입히고 부모가 보기에 좋은 책을 읽히고 부모가 보기에 괜찮은 진로를 강요하지만 자녀들 역시 스스로 무엇을 바라고 지향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음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부모의 욕망은 실현될 수 있지만 자녀의 주체성은 바닥에 떨어져버리고 만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화자는 오렌지를 인식의 대상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고,그 인식의 방법이 무엇이든 오렌지를 온전히 인식하는 것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오렌지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화자에게 설명한다면다시 말해 인식의 주체와 대상을 서로 바꿔 본다면이것만큼 오렌지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어찌 되었건 타인을 대상화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꿈꾸며 장기판의 말처럼 타인을 자신의 계획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싶어 한다그러나 그럴수록 그 모임의 구성원들은 지도자와의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좋은 지도자는 그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환경을 만들어준다아니 이러한 일들조차 구성원들과 함께 해나간다


영적 지도자들은 성도들이 스스로 분별하는 힘을 가지고 자발적인 신앙 생활을 하도록 이끌어 내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어떠한 사역이든지 일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면 성도들을 대상화할 수밖에 없다이 사역을 멋지게 성취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조직의 부속품처럼 소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우리 교회는 겨울 내내 여러 사역으로 달려 왔다이제는 단순한 순종과 성실함을 요구하지 않고 성도들 스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을 살도록 돕고 그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줄 영적 지도자들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내가 보는 그들이 나를 볼 수 있는 주체적인 자들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