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 사랑, 문학

모성(母性) (2013.2.27) 삶, 사랑, 문학제목 : 모성(母性) 컴퓨터를 뒤지다가 오래전 쓰고 올리지 않은 글을 발견하여 뒤늦게 올려봅니다. 2013년 2월 27일에 저장한 파일로 되어 있네요 어디서 나왔을까 깊은 산길갓 태어난 듯한 다람쥐새끼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그 맑은 눈빛 앞에서나는 아무것도 고집할 수가 없다세상의 모든 어린 것들은내 앞에서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나를 어미라 부른다.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젖이 차 올라 겨드랑이까지 찡해오면지금쯤 내 어린것은얼마나 젖이 그리울까울면서 젖을 짜버리던 생각이 문득 난다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난만한 그 눈동자,너를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고갈 수도 없다고나는 오르던 산길을 내려오고 만다하, 물웅덩이에는 무사한 송사리떼-나희덕 육아의 과정은 남자들.. 더보기
[광장, 청춘] 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마을 제목 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마을 (박용래, ) 얼마 전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처음으로 반 단합대회를 한다고 들떠 외출을 한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주최한 반 대항 축구대회에서 아들이 속한 반이 우승을 했다는 것이다. 아들은 후보선수였고 아예 출전할 기회도 없었지만 누구보다 우승을 기뻐했고 처음 하는 반 단합대회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신나게 친구들과 어울려 고기뷔페로 향했다.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지 원래 집에 오기로 했던 시간보다 40분이나 지나서 집에 돌아왔다. 귀가 시간은 어겼지만 중학생이 된 후 처음으로 여러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날이라서 별 다른 꾸중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갑자기 회비로 가지고 나간 2만원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궁금해졌다. 고기 뷔페가 1인당 1만2.. 더보기
[예스31칼럼] 직업 제목 : 직업 학교 관사 옆 공터가 심심하지 않게거기에다 호박을 심자 했더니선생님,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심나요?깔깔대더니 어느새 호미와 삽과 괭이가 모이고,비료가 한줌씩 오고,쇠똥거름도 한 리어카 달려왔지사실 이런 일이 생전 처음인 나는구덩이마다 호박씨 서너 개씩은 꼭꼭 심으며이것들이 땅속에서 부디 숨결을 열어 주기를그리하여 이 세상하고 다시 관계를 맺어주기를얼마나 조마조마 기다렸는지 몰라 떡잎이 삼삼오오 오종종 돋은 날나는 고것들이 햇볕의 끈을 부디 놓치지 않기를빌었지, 덩굴손을 가지게 되면자기 아닌 존재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그것을 손 뻗어 툭, 건드려 보는 재미로 살아가기를수업 없는 빈 시간에 둘러보고 물을 주며또 빌고는 했지 사는 게 뭐 별거 있겠어.자꾸 물을 주다 보면호박꽃은 필거.. 더보기
[예스31칼럼] 눈으로는 덮을 수 없는 검은 항아리 제목 : 눈으로는 덮을 수 없는 검은 항아리 전 국민을 비탄에 빠지게 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승객 4백 여 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도를 향해 가던 배가 침몰하면서 수백 명의 생명이 한꺼번에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특히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교 학생들의 희생이 너무나 커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쉽게 글을 이어 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감정이 격해진다.얼마 전 김소진의 소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라는 작품을 학생들과 읽고 수업한 적이 있었다. 이 작품은 어린 소년이었던 주인공 ‘나’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무기력한 어른으로 아프게 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은 소설의 줄거리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나'는 재개발 이야기가 한창인 미아리 셋집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 더보기
[예스31칼럼] 십자가와 역설 제목 : 십자가와 역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ㅡ윤동주,「십자가」 일반적으로 ‘역설[paradox, 逆說]’은 자기 자신의 주장이나 이론을 스스로 거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설은 흔히 ‘자기모순(自己矛盾)’이나 ‘자가당착(自家撞着)’과 같은 한자 성어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한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상황에서 사용한다. 그러나 문학에서의 ‘역설’은 좀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는 진리에 어긋나고 부.. 더보기
[예스31칼럼] 밥 좀 먹자 삶, 사랑, 문학제목 : 밥 좀 먹자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연암 박지원의 한문 소설인 「민옹전」으로, 연암이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 ‘민유신’이라는 노인의 행적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다. 연암이 우울증으로 앓아누웠던 어린 시절에 민 영감의 소문을 듣게 되고 해학과 기지가 넘치는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을 얻기 위해 그를 집으로 초대한다. 민 영감은 무인으로 ‘이인좌의 난’에 종군하여 첨사 벼슬을 받았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살았다. 능력과 재주는 뛰어나지만 당시는 관념에 파묻힌 성리학 사상이 뿌리 깊었던 시대였고 개인의 능력 따위는 관심이 없던 봉건적 사회였기 때문에 그의 능력을 펼치기에 마땅한 세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루는 사랑방에 모인 손님들이 민 영감을 시험해보기 위해 그에게 질문을 한다. 그 질문들은.. 더보기
[예스31칼럼] 꿈, 지속되어야 하는 삶, 사랑, 문학 제목 : 꿈, 지속되어야 하는 그대 벽 저편에서 중얼댄 말나는 알아들었다.발 사이로 보이는 눈발새벽 무렵이지만날은 채 밝지 않았다.시계는 조금씩 가고 있다.거울 앞에서그대는 몇 마디 말을 발음해본다나는 내가 아니다 발음해본다꿈을 견딘다는 건 힘든 일이다꿈,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삶의 전부, 쌓아도 무너지고쌓아도 무너지는 모래 위의 아침처럼 거기 있는 꿈-황동규, 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가 청년이라 불리던 그 시절, 교회에는 ‘비전’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었다. 너도나도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자신이 어떤 일을 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헌신할 것인지를 나눴다. 그런데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꿈을 이루었나? 아니, 내 꿈은 정.. 더보기
[예스31칼럼] 주체와 대상 삶, 사랑, 문학제목 : 주체와 대상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오렌지다.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도 있다.마땅히 그런 오렌지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도 있다.마땅히 그런 오렌지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대는 순간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다.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에 있다.시간이 똘똘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오렌지의 포들한 거죽엔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신동집 -.. 더보기
[예스31칼럼] 임천한흥(林泉閑興) 제목 : 임천 한흥(林泉閑興) 보리밥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후에바위 끝 물가에 실컷 노니노라그 남은 여남은 일이야 부러울 줄이 있으랴 누고셔 삼공(三公)보다 낫다 하더니 만승(萬乘)이 이만하랴이제로 헤어든 소부 허유(巢父許由)가 약았더라아마도 임천 한흥(林泉閑興)을 비길 곳이 없어라 내 성이 게으르더니 하늘이 알으실사인간 만사(人間萬事)를 한 일도 아니 맡겨다만당 다툴 이 없는 강산(江山)을 지키라 하시도다 -윤선도, 중에서 윤선도는 1차 예송논쟁 당시 남인을 대표하여 서인의 송시열과 끊임없이 싸워야만 했고 결국 오랜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게 된다. 은 지긋지긋한 경쟁과 정치 싸움에서 벗어나 자연에 귀의해서 살면서 자연 속에서의 한가로움을 즐기는 삶에 대해 노래한 것이다. 보리밥에 풋나물을 알맞게 먹고 .. 더보기
[예스31칼럼] 새해 다짐 삶, 사랑, 문학제목 : 새해 다짐 겨울 나무와바람머리 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나무도 바람도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누구도 혼자는 아니다나도 아니다.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사랑도 매양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말없이 삭이고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황송한 축연이라 알고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순수의 얼음꽃,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백설을 담고 온다. -김남조, 「설일(雪日)」 2013년을 마무리하며 한 해를 어떻게 지냈는지 알고 싶어서 1년 간 예스삼일에 기고한 글들을 찾아 읽어 보았다.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