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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랑, 문학/[광장,청춘], [예스31],[ccmer] 칼럼

[예스31칼럼] 밥 좀 먹자

삶, 사랑, 문학

제목 : 밥 좀 먹자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연암 박지원의 한문 소설인 「민옹전」으로, 연암이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 ‘민유신’이라는 노인의 행적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다. 연암이 우울증으로 앓아누웠던 어린 시절에 민 영감의 소문을 듣게 되고 해학과 기지가 넘치는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을 얻기 위해 그를 집으로 초대한다. 민 영감은 무인으로 ‘이인좌의 난’에 종군하여 첨사 벼슬을 받았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살았다. 능력과 재주는 뛰어나지만 당시는 관념에 파묻힌 성리학 사상이 뿌리 깊었던 시대였고 개인의 능력 따위는 관심이 없던 봉건적 사회였기 때문에 그의 능력을 펼치기에 마땅한 세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루는 사랑방에 모인 손님들이 민 영감을 시험해보기 위해 그에게 질문을 한다. 그 질문들은 주로 ‘신선을 보았느냐’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을 보았느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무엇이냐’ 등의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질문에 민 영감은 가장 현실적이면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답변을 준다. 먼저 “신선을 보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집이 가난한 자가 신선이다. 부자들은 늘 속세를 그리워하는데, 가난한 자는 언제나 속세를 싫어하니, 속세를 싫어하는 자들이 신선이다.”라고 대답한다. “가장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답변은 “글을 많이 읽은 자”라고 하는데 이는 나이가 많다는 것은 경험이 많다는 의미인데, 결국 글을 많이 읽은 자는 그만큼 간접 경험이 많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에 대해서는“온갖 맛을 조화롭게 하는 소금”이라고 답한다.

 

 다음 글은 그 중에서 “불사약을 보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민 영감의 대답이다.

 

 “이거야말로 내가 아침저녁으로 늘 먹는 것인데, 어찌 모르겠소? 큰 골짜기 굽은 소나무에 달콤한 이슬이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든 지 천 년 만에 복령(茯笭)이 되지. 인삼 가운데는 신라의 토산품이 으뜸인데, 단정한 모양 붉은 빛에 사지가 갖추어진 데다, 쌍갈래로 땋은 머리는 아이처럼 생겼지. 구기자가 천 년 되면 사람을 보고 짖는다우. 내가 일찍이 이 세 가지 약을 먹고는 백 일이나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숨결이 가빠져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지. 이웃집 할미가 와서 보고는 이렇게 탄식합디다.

  

‘자네 병은 굶주렸기 때문에 생겼지. 옛날에 신농씨(神農氏-중국 전설에 나오는 옛 왕 중 하나로 농사짓는 법을 백성에게 가르쳤고, 오곡과 각종 풀로 백성들의 병을 고치려 했던 인물)가 온갖 풀을 다 맛보고 비로소 오곡(五穀)을 뿌렸으니, 병을 다스리려면 약을 쓰고 굶주림을 고치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네. 이 병은 오곡이 아니면 고치기 어렵겠네.’

 

 나는 그제야 쌀로 밥을 지어먹고는 죽기를 면했다우. 불사약치고 밥보다 나은 게 없는 셈이지. 그래서 나는 아침에 한 그릇, 저녁에 또 한 그릇 먹고, 이제 벌써 일흔이 넘었다우.”

  

민 영감은 그 귀하다는 복령과 인삼, 구기자 세 약초를 모두 먹어 보았다. 그러나 귀한 약을 먹고도 밥을 먹지 않으니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다시 밥을 먹으니 죽기를 면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보아 진짜 불사약은 우리가 매일 몇 번씩 먹는 밥이라는 게 민 영감의 답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내용들은 대부분 허황된 것들인 것 같다.중세 시대에는 바늘 위에 천사가 몇 명이나 올라갈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신학적 논쟁이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 안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몸이 아프다고 하면 영적 문제이니 기도하라고 한다거나 옆집에 불교 신자가 살고 있으니 영적으로 눌린다며 대적기도를 해달라느니 하는 식이다. 물론 이런 대답이 무조건 틀리다고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반대로 영적인 것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귀하디귀한 약초를 다 갖춰 먹어도 밥 안 먹으면 죽을 수 있지만, 약초를 안 먹고 밥을 먹으면 일흔이 넘도록 살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것만 추구하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예를 들면 연인들은 자주 이벤트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만난 지 며칠이 되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이벤트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삶에 스며들어 있는 습관이나 일상 안에서 확인될 때가 많다.

 

 그렇다면 성도의 생활 가운데 ‘밥’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매일 꾸준히 하는 Q.T와 같은 말씀과 기도 생활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조차도 ‘밥’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그 자체가 밥은 아니라는 의미다.말씀과 기도 생활에 전무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속세’와 ‘성도의 삶’을 이원론적으로 구별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나는 얼마 전에 SNS 상에 친구와 삼겹살을 먹는 사진을 올렸다가 기도할 때에 삼겹살 먹는다며 질타 아닌 질타를 당한 경험이 있다. (곧 오해가 풀리기는 했지만) 친구 만나서 고기 먹는 것은 육적인(타락한) 삶이고 그 시간에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은 영적인 삶일까? 오히려 말씀과 기도생활만 열심히 하는 삶이 자기 교만으로 나타나고 타인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오히려 그 영혼은 자기도 모르게 굶어 죽어갈 수 있다. 살아 있는 믿음이란 말씀과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에너지 삼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발현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굳이 성경을 들먹이지 않아도 상식선에서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를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들이미는 성경 구절 나열, 그리고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 좋을 대로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많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웠다는, 장로가 사장인 어떤 회사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법정 최저 임금조차 지키지 않고 모든 휴가는 무급이며 작업 환경 조차 열악한 상황에서 이를 바로 잡고자 항의하는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에 대한 내용을 검색하다가 임직원들이 창립 기념 감사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진을 보게 되었고 일상과 상식을 우습게 여기는 이런 기업이 ‘기독교’라는 이름 안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가 막히고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렇게 말을 한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걸어 놓은 이벤트적인 행사를 열심히 벌이고 참여하는 것으로 과연 내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것인지 본질적인 고민해봐야 한다고. 그렇게 과하게 불사약을 찾아 헤매는 동안 밥을 지어 먹지 못한 내 영혼은 그렇게 말라 죽어갈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몸이 아플 때 약을 찾아 먹는 것이 필요하듯이 그런 일회용 행사가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밥이 아니다. 이것은 특새 보다 보새에 주력하자는 말도 아니며 교회 안에서만 성경 읽기 말고 직장에서도 읽고 선교 기간에만 전도하지 말고 평소 출퇴근길에서도 사영리로 전도하라는 그런 말도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라는 이름을 걷어낸 자리에서도 여전히 내 모습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고 또 그러기를 힘쓰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매순간 성령님과 함께 함을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에 오래 붙어 있는 것으로 믿음 생활 잘 하고 있다고 여기며 스스로의 문제를 덮어버리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불사약은 하나님의 자녀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영양제, 보약, 종합비타민 챙겨먹기 전에 밥! 밥! 밥!밥 좀 챙겨 먹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