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 되지 않기 위해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김종삼 「북치는 소년」
얼마 전 김종삼의 「묵화」라는 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북치는 소년」 역시「묵화」와 마찬가지로 생략과 압축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할머니와 소의 말 없는 교감이 마음을 울렸던 「묵화」에서와 다르게「북치는 소년」에서의 빈 공간에는 날카로움이 숨어 있는데 이는 우리를 멈칫하게 할 정도로 강렬하다.
이 작품이 쓰인 1960년대를 고려해 본다면 이 작품의 배경으로 전쟁 이후에 어렵게 살면서 서양으로부터 구조물품을 받아 지낼 수밖에 없었던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가난한 아이가 서양 나라에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다. 그 카드에는 북치는 아이와 함께 양이나 진눈깨비 같은 것들이 그려져 있었다. 반짝이고 아름다운 장식들이 담긴 카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아름다움을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못을 박는다. 구제물품과 함께 날아온 그 카드는 가난한 아이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한 아이는 아름답고 화려한 북치는 소년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더 뼈아프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낸 사람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 사람은 순수한 동기에서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그 카드를 만들어 보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낸 마음의 동기는 우리가 구세군 자선냄비에 얼마를 내고 사랑의 열매나 크리스마스 씰 등을 사는 일에 참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어려운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일에 동참했다는 마음으로 뿌듯함을 느낀다. 문제는 우리가 낸 돈이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위해 사용이 되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지만 알 방법도 없다는 점이다. 후원금을 관리하는 단체들이 이 후원금을 구제가 아니라 다른 일에 잘못 사용하는 일이 밝혀져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하지만 이를 관리할 방법을 후원자들은 잘 알지 못한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낸 것은 후원한 사람이 아니라 그 중간에서 후원을 돕는 단체였던 것이다. 이 사회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구제에서조차 소외를 만들어 낸다.
나 역시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에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내면서 그것으로 나의 도덕성을 평가할 때 조금이라도 만족스럽게 여기며 만족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올해 내가 후원하던 유기견 구조 단체에서 후원금으로 큰 갈등을 겪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이 단체에서 유기견 보호소를 짓겠다고 해서 회원들이 힘들게 후원금을 마련한 일이 있었고 나도 적은 돈이나마 참여했었다. 문제는 이 단체의 대표가 회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보호소를 그린벨트 지역에 건축했고 결국 불법 건축물로 신고를 당하면서 5천만 원이 넘는 후원금을 그대로 날려버린 일이 벌어졌다.회원들이 뒤늦게 분노해도 그 후원금을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무조건 철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일차적으로는 그 단체장의 잘못이었겠지만 이차적으로는 후원만 하고는 알아서 잘 하리라는 생각으로 세세하게 살피지 않았던 회원들의 무관심 역시 잘못이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이 사태를 직접 겪으면서 깨달은 것은 후원금을 낸 회원들을 소외시키고 단체장 혼자 후원금을 마음대로 사용했던 부분에 대해서 이 소외의 벽을 뚫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연말연시가 되니 교회나 사회 단체, 정부 부처 등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구제나 후원 사역들을 많이 행해지고 있다. 후원금을 집행할 때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땀 흘려 번 돈의 일부를 떼어 후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내용 없는 아름다움’으로 전락시켜버리지 않도록 깨끗하고 정직한 집행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들 역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내 마음의 만족을 위해 적선하듯이 후원금을 던지고는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스스로 소외의 벽을 쌓아 올린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정말 그들이 우리의 이웃이라 생각한다면 가난한 아이에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해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가난한 아이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준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더욱 필요할 때이다.
다시 추운 계절이 되었고 다시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온 거리에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불빛들이 ‘내용 없는 아름다움’으로 끝나버리지 않도록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분명히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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