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굳은살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어느 날 내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곱게 생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분 좋은 굳은살.이유는 최근 꽤 성실하게 우쿨렐레를 잡고 딩가딩가 놀았기 때문이다. 15년 직장생활을 정리하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준비했던 것이 바로 우쿨렐레였다. 나는 원래 기타 연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내 환갑이나 칠순 등을 기념하는 그날, 멋지게 기타연주를 하는 낭만 할머니가 되는 것이 내 꿈이었다. 그래서 실은 중학생 때 한 번, 대학생 때 한 번 무려 두 번이나 기타를 사고 레슨을 받았었으나 끈기 없는 내 성격 탓에 어느 수준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고 말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나는 늘 시간의 여유를 꿈꿔왔었기 때문에 그 여유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쿨렐레를 주문하고 유기견을 입양했다. 그리고 마지막 퇴근길 택배로 도착한 우쿨렐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쿨렐레는 나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해주었다. 물론 처음 악기를 접했을 때의 신기함과 새로움이 급하게 사라지긴 했지만 악기라는 것이 한순간 몰아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꾸준히 악기를 잡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어느 날 내 왼손을 보니 손가락 위에 굳은살이 내려앉아 있었다. 연주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지만 기분은 좋았다. 생각해보니 누구에게나 있는 연필 때문에 생긴 굳은살을 제외하고는 무언가를 꾸준히 해서 생긴 최초의 굳은살인 것 같았다. 그래서 끈기 없고 게을렀던 나를 반성하기도 했다.
우리는 언제나 특별함을 기다린다. 사랑을 할 때도 ‘너는 특별한 존재야’라는 말을 듣기 좋아하고 특별한 기념일을 기억하고 특별한 이벤트를 하는 일에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폭풍처럼 몰아치는 사랑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여전히 잔잔하게 존재하고 사소함으로 이어지는 사랑을 우리는 ‘성숙’이라고 말한다. 예전에 어떤 지체가 학교 기독교 동아리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만난 뜨거운 체험을 간증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문제는 그 지체는 그 뜨거움이 이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다시 뜨겁게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데 우리 교회에서는 그 체험을 다시 할 수 없다며 결국 다른 교회로 떠나고 말았다. 일상에서 늘 동행하는 성령님을 느끼지 못하고 남들과 다른 특별한 체험만이 신앙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그 지체를 말릴 수가 없었다.
반대로 A관 시절 나는 땜빵 반주자로 예배 반주를 하기도 했었는데 A관 본당의 피아노가 놓인 자리에 남아 있는 자국을 보고 작은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피아노 페달 위에 발을 올려놓을 때 발꿈치가 바닥에 닿아서 생긴 자국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예배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을 것이고, 예배를 돕는 그들의 흔적들이 모여 만들어진 자국이었다. 지금은 리모델링이 되어 그 흔적이 사라졌지만 당연하게만 여겼던 그들의 헌신이 만들어낸 굳은살과 같은 자국이라 감동을 받았던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지난 3월에 시작한 장년부 제자훈련이 지난 11월 15일, 삼일기도원에서 1박2일 수련회를 가지면서 마무리 되었다. (장년부 목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청년들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가장 많은 은혜를 받았던 것은 집사님들의 일상적인 삶의 고백이었다. 쉼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 교회의 중심에서 조용히 가족들을 챙기고 자기 일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걸어온 인생길이 평탄하기도 하고 고단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자리까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지 않고 함께 동행해온 그 삶이 내 현재 모습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 주었고, 제자훈련을 마치고 특별하게 변한 것이 없다고 수줍게 고백하시는 집사님이 모습에서 오히려 더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믿음이 습관과 형식으로 포장되는 것은 당연히 경계해야 하겠지만 일상의 믿음은 생활과 믿음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상의 반복에서 생긴 굳은살이 오히려 부끄럽고 그것을 감추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어설픈 내 굳은살이 더 부끄럽다. 더 열심히 다지고 다져서 이 굳은살을 단단하고 아름답게 쌓아가고 싶다.
'삶, 사랑, 문학 > [광장,청춘], [예스31],[ccmer]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스31칼럼] 새해 다짐 (0) | 2014.02.03 |
---|---|
[예스31칼럼]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 되지 않기 위해 (0) | 2014.01.02 |
[예스삼일칼럼] 이 땅의 중2들에게 (0) | 2013.11.11 |
[예스삼일칼럼] 복(福) (10월 20일) (0) | 2013.10.19 |
[예스삼일칼럼] 그대 함께 간다면 (10월 6일) (0) | 2013.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