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랑, 문학
제목 : 저녁이 오는 소리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것인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데 먼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나희덕,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것인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데 먼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나희덕,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오늘은 책 한 권을 소개하려 합니다. <고마워, 치로리>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치로리’는 일본에서 유명한 치료견으로 2006년 3월 암으로 죽을 때까지 13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을 했습니다. 치로리의 추모식 때 그의 도움을 받은 환자와 가족 등 3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그 자체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었지요.
‘치로리’는 유기견이었고 잡종인데다가 양쪽 귀의 모양이 서로 다른 짝귀라서 외모만 봐서는 눈에 띄는 개는 아니었습니다. 뒷다리를 다쳤는지 정상이 아니었고 몸집이 작은 치로리는 우연히 당시 치료견을 훈련, 보급하는 일을 하고 훗날 이 책을 쓰게 되는 ‘오키 토오루’씨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폐가를 떠돌며 쓰레기통을 뒤지던 치로리는 동물을 싫어하는 마을 사람들의 신고로 유기견 보호소에 갇히게 되었고 오키 토오루 씨가 안락사 직전에 구출해냅니다. 그때까지 치로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팡이를 보거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는 공격적으로 변하는 걸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치로리는 인간들로부터 학대를 받았고 강제로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치로리는 인간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치료견으로서 살게 됩니다. 치료견이라고 해서 무슨 일을 할까 궁금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들의 업무는 마음의 문이 닫힌 사람들과 마주보고 ‘눈 맞추기’, 그리고 ‘발맞춰 걷기’ 같은 간단한 훈련부터 시작되더군요. 놀라운 것은 이 단순한 행위를 통해 환자들이 치유되는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히키코모리였던 한 학생은 치로리를 통해 마음을 열고 생명과 교감하는 법을 배웠고 ‘ 치료견 훈련사’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으며 유기견을 입양하여 사랑으로 돌봐주는 모습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척추를 다쳐 전신마비 상태로 몇 년 간 말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 했던 할머니는 치로리와의 눈 맞춤으로 치로리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말을 하게 되었고 치로리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노력한 결과 결국 전신마비에서 조금씩 호전되었습니다.
원래 오키 토오루 씨가 훈련하던 치료견들은 미국에서 수입한 순수 혈통 시베리안 허스키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답니다. 그래서 잡종이기도 했지만 다리가 불편하고 몸집이 훨씬 작은 치로리가 그들과 어울릴 수 있을지 염려되었고 조련사조차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치로리는 훌륭하게 모든 훈련을 성실하게 마치고 좋은 치료견이 된 것이지요.
사람들은 ‘유기견은 더럽고 세균 투성이고 전염병을 옮길 것이다. 사납고 사람을 물고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잡종은 머리가 나쁘고 훈련을 받기 어렵고 사람과 같이 살기 어려울 것이다.’ 라는 식의 선입견으로 치로리를 바라봤고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학대받았던 치로리는 오히려 인간을 위한 치료견으로 살게 됩니다. 치로리는 인간들에게 받은 과거의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을 돕고 그들과 함께 하는 현재의 시간에 더욱 충실했습니다. 오히려 치로리는 사람을 선입견 없는 마음으로 대했기 때문에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함께 걷는 것으로 위로했고 말 못하는 환자들의 눈을 바라봐 주는 것으로 대화를 했고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 옆에 누워 있는 것으로 체온을 나눌 수 있었던 겁니다.
나희덕 시인은 이 작품을 부모님을 생각하며 썼다고 하지만, (고아가 아닌데 고아원에서 자란 특이한 이력을 가진 나희덕 시인은 부모님을 생각하며 쓴 작품이 많습니다.) 저는 이 작품의 대상을 부모의 존재만이 아니라 선입견 때문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 했던 모든 존재들로 확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가 이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이중적이다 혹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멀리 돌아가고 그냥 지나쳐 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색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상을 단편적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 대상이 여러 겹의 마음으로 수천의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음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저녁’이라는 때는 하루를 마감하는 성찰의 시간입니다. 또 저녁이라는 시간은 계절로 보면 가을이고 인생으로 보면 중년의 때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휘몰아쳤던 청년의 때가 지나면 조금 더 잠잠히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오게 되겠지요. 그 때가 되면 나의 모습만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도 역시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그 존재의 그늘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게 되나 봅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듣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의 내면의 성숙함이 필요한 것이지요. 나이는 이미 먹을 만큼 먹은 저는 언제쯤 그 ‘저녁이 오는 소리’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게 될까요. 아름다운 개 ‘치로리’와 아름다운 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를 함께 묶어 소개한 것으로 타인의 그늘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조금이나마 노력한 것이 아닌가 저 혼자 생각해 봅니다.
<예스31칼럼>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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