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랑 문학
제목 : 궤도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세상의 궤도에서 뱅뱅 도는 삶을 살지 말자고 그렇게 저는 대학교 4학년 때 주일에 보는 임용고시를 보지 않겠다고 했었습니다. 그 때는 그게 제 신앙의 태도라 생각했었거든요. 그렇게 1년 정도 제법 규모 있는 학원에서 강사로 생활을 하다가 기간제 교사라는 기회를 얻은 후 15년 가량 저는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었습니다. 기간제 교사는 휴직 교사들의 휴직 기간 동안 대신 업무를 하는 자리인데 요새는 육아 휴직이나 동반 휴직 등을 이유로 1년에서 3년 정도씩 휴직을 하는 교사들이 제법 많아서 저는 저 나름대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초기 직장 생활을 돌아보면 좋은 교사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업무를 못 하는 편도 아니고 학생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고 수업도 못 한다고 할 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학교에서 하는 업무라는 게 지난 해 자료 보고 형식적으로 공문 만들어 끼워 놓으면 되는 경우도 많고 수업은 한 번 준비하면 몇 년씩 사용할 수도 있고 조금만 노력하면 큰 사고 없이 지낼 수 있었거든요. 술자리 피한다고 다른 교사들과도 별 다른 관계를 만들지 않고 늘 말도 없이 얌전히 지내서 다들 제가 무척 소심하고 낯가림이 심한 줄 알았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살았던 이유는 그때 대청부 간사를 맡고 있던 때였고 교회 내의 온갖 행사들에도 여러 역할을 했었기 때문이었지요. 수요예배, 목요일 간사 모임, 금요 철야기도회, 토요일 성가대 연습에 리더모임. 그 일에 충실하게 사는 게 하나님 중심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직장 생활이 내 중요한 삶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극적인 직장 생활이 이후 오랫동안 습관처럼 남았습니다. 평소 제 모습과 직장에서의 제 모습이 그렇게 많이 달랐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대화 중에 원래 저는 말이 많고 활발하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에 지나가던 어떤 부장 선생님이 저에게 한 마디를 툭 던지고 가셨습니다.
“그래? 그렇게 사는 건 가짜인데?”
가짜? 저는 그 순간 작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특별새벽기도 기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개근을 했고 월요일 피곤할 거 뻔히 알면서도 주일 모든 예배를 다 참석하고 평일에도 거의 매일 교회 문턱을 드나들며 바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데 나보고 가짜로 살고 있다니.
‘그렇게 사는 건 가짜인데....’
그래요. 저는 가짜였던 것입니다. 나름 머리 쓰면서 제 생활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 전혀 저답지 않게 그렇게 직장생활을 해왔던 거죠.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가운데 보람을 느끼고 있으니 굳이 직장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이라고 우겼지만 과연 그랬을까요? 오히려 세상의 궤도에서 뱅뱅 도는 삶을 살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교회 생활’이 다시 의미 없는 궤도로 전락하고 말았던 겁니다. 제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 생활이었지만 그게 같은 거라고 착각했던 거죠(안 궁금할 수도 있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저는 저 선생님과 무척 가까이 지냅니다. 제가 존경하는 유일한 동료 교사이기도 하고요).
그 이후로 제 생활이 좀 달라졌습니다.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것들만 하고 편하게 지내자는 생각은 떨쳐 버렸습니다. 교회의 일과 직장의 일을 칼같이 구분하는 습관부터 버렸지요. 그리고 무작정 열심히만 질주하면 주님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무식함에서도 벗어나려 했습니다. 그런 열심으로 천국 마일리지를 쌓아서 마일리지가 다 채워지는 순간 구원받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또 외적으로 유명한 사람, 권위 있는 사람이 선택한 길이니 좋은 궤도일 거라고 무작정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궤도의 본뜻이 무엇인지, 또 어느 궤도를 가야 하는지를 저 스스로의 의지로 알아보고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비판적 사고와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비판적’이라는 말이 반성경적인 말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지만 실은 과연 이 길이 옳은 길인가 끊임없이 되묻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옳고 그름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겠지요). 의미 없는 험담과는 다른 말인 거죠. 이 비판적 태도가 결국 ‘이탈’과 연결되는 게 아닌가 싶네요. 내가 돌고 있는 이 궤도가 과연 옳은가를 알기 위해서는 궤도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이 비판적 태도 안에 주님이 허락하신 내 모습을 감춘 채 무작정 질주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는 것도 포함이 되겠지요. 저는 여전히 부족한 것 많은 사람이라 항상 실수하고 후회하는 일이 많습니다. 제 선택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이 비판적 태도를 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남이 만든 궤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 사는 것이 오히려 저답지 않으니까요. 물론 주님의 구원의 궤도에 단단히 묶여 있음을 알고 그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작년 이맘때 저는 학교를 그만 두고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고 이제 1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삶이 다시 습관의 궤도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점검할 때가 온 것이죠. 여러분들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면 자신의 삶을 비판적 태도로 한 번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사색의 계절 가을이 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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