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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랑, 문학/[광장,청춘], [예스31],[ccmer] 칼럼

[예스31칼럼]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남

삶, 사랑, 문학
제목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남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란시스 잠’과 ‘도연명’과 ‘라이널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시인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기생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은 다른 여인과 강제 결혼을 시켰는데 백석은 이후 혼자 만주로, 러시아로 떠나 혼자 살아갑니다(백석이 사랑한 여인의 이름은 김진향인데 그렇게 헤어진 후 백석은 고향인 북쪽에, 김진향은 남쪽에서 지내다가 해방과 함께 분단이 되면서 결국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사이가 됩니다. 김진향은 후에 자신이 운영했던 고급 요정 ‘대원각’을 사찰로 사용하도록 법정 스님께 기증했고 죽기 직전 1천억 원이라는 돈을 시주했는데 그 때 자신의 1천억 원이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 자신의 재산으로 '백석문학상'을 만들기도 했지요). 백석은 타향살이를 하며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에 종사했으나 늘 사는 게 어려웠습니다. 백석의 유명한 작품들을 보면 그의 피폐하고 힘든 삶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극복 의지를 가지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바라보지만, 백석은 그리 씩씩하게 잘 이겨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짠한 마음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메이었다. / 바로 날도 저물어서 /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에서
 
그는 길고 긴 타향에서 추운 거리를 헤매다 세들어 사는 방에 들어가도 가족도 없이 다시 차디찬 방바닥만이 자신을 맞이하는 그런 생활을 돌아봅니다.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마음도 외롭고 쓸쓸한 그 현실에 대해 백석은 속풀이를 하듯이 생각을 정리해 본 것 같습니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흰 벽을 스크린을 삼아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난’ 자신의 삶을 마치 영화처럼 비춰 봅니다. 그런데 그냥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삶이 아닙니다. ‘높고’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삶이 어떻게 ‘높은’ 다시 말해 '정신적으로 고결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보통 하늘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존재들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서 출세와 성공의 길을 걷고 만인의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사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하늘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아마도 백석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시인'으로 규정지은 것 같습니다. 프란시스 잠이나 도연명,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같이 유명하면서도 자신이 닮고 싶은 다른 시인들의 삶을 떠올려 봅니다. 백석에게 부러운 것은 가난하지 않고 외롭지 않고 슬픔이 없는 삶이 아니라 아름다운 시, 진솔한 시를 창작할 수 있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가난하지만 높고, 슬픔이 가득 차 있지만 사랑이 넘치는 시인이야말로 넘치는 정서로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삶의 모습이라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존재로 태어난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늘이 내어 준 그 운명 같은 외롭고 쓸쓸한 삶을 열심히 작품에 담아 냅니다.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 누워서 / 어느 아침 의원을 뵈이었다 (중략) /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쓴다 /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백석, ‘고향’
 
이 작품은 타향살이 중 갑자기 병이 났을 때 도움을 받은 의원에게서 고향의 따뜻한 정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작품이 읽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미소를 띄게 하는 이유는 그가 타향에서 혼자 병이 나서 앓아누웠다고 해서 자신의 개인적, 사회적 처지를 원망만 하거나 슬퍼만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는 백석과 같이 고향을 떠나 방랑하는 유이민들이 많았습니다. 그 타향살이의 외로움 속에서 건너건너 아는 어른을 만났을 때 맥을 보는 손길에서조차 따뜻한 위로를 느낀다는 그 섬세한 마음을, 타향살이로 힘들고 외로운 이들은 충분히 이해할 것입니다.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고 함부로 충고하지 않고 그렇다고 타인의 슬픔을 가치 없다 깎아 내리지 않는 태도. 그것은 자신의 가난하고 외로우면서도 높은, 그리고 슬픔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사랑이 흘러넘치는 자신의 진짜 삶을 조곤조곤 풀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저는 부족한 필력과 깊이 없는 사색으로 글을 쓸 때마다 늘 죄인 같은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그나마 어줍잖게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충고나 교훈보다 부족하나마 ‘저는 이렇게 이렇게 살고 있어요’라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더 진실한 것임은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 글을 통해 한 명이라도 위로를 받았다거나 힘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감사히 여기며 글을 쓰겠습니다. 결실이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왔습니다. 내 나무에 어떤 열매가 달렸는지보다 이 열매가 어떤 사람들에게 축복과 위로를 주었는지를 먼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2012.10.21 예스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