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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랑, 문학/[광장,청춘], [예스31],[ccmer] 칼럼

[예스삼일칼럼] 직접 말하란 말이다

삶, 사랑, 문학

제목 : 직접 말하란 말이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 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마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비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이인성의 소설 제목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에서

-황인숙 <강>

 

 

몇 년 전에 예스삼일에 ‘표현’에 관한 글을 연재한 적이 있었다. 마음에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더라도 무조건 참고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었다. 거친 말, 직구 스타일의 말들로 가득 찬 세상 같지만, 의외로 개인적 관계 안에서는 해야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속병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제대로 풀어내는 방법을 모르면 악한 방법으로 터져 나올 때가 있는데, 어린 아이를 향한 무지막지한 폭력, 교실 내의 왕따, 묻지 마 범죄 등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평소 하고 싶은 말을 그때 그때 적절하게 표현하게 되면 막연했던 불만이나 감정들이 구체적이 되고,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감정이 번지지 않게 되며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고 타인과의 관계 역시 잘 유지될 수 있다. 내가 좋지 않은 필력으로 꾸역꾸역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복잡한 생각들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다.

 

그 런데 사람들이 표현을 안 하고 마음속에 담고만 있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는 모습이 한 가지만 있겠는가. 어떤 이들에게는 자기 연민에 빠져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사는 것이 괴로운지를 모든 사람에게 토로하는 습관이 있기도 하다. 교회 안 모임에서 기도제목을 나눌 때, 그 시간이 서로의 삶을 나누고, 인간의 나약함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신실함을 붙잡아야만 그 은혜로 이 세상을 한 발자국씩 걸어갈 수 있음을 알아가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시간에 내가 너보다 훨씬 힘들고 괴로운데 너는 왜 그런 문제를 고민이라고 하느냐 참 배부른 소리 한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신발 안의 작은 모래 한 알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대한 바위덩어리보다 더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문제들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도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기도제목을 나누는 자리 자체가 구성원 모두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때가 많은 자리이다. 혼자만의 고충을 토로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 늘 소개한 작품은 읽기만 해도 시인의 짜증 어린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우리 삶의 시시콜콜한 어려움, 푸념들을 화자는 강가에 가서 직접 말하라고 한다. 가만히 보면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닌 듯하다. ~하지 마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당신이 직접 /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는 말로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한꺼번에 지르는 듯하다. 이 화자가 이렇게 짜증을 내는 이유는 마지막 연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다. ‘강가에서 우리 / 눈도 마주치지 말자’라는 구절을 보면 나에게 인생의 자질구레한 푸념들을 늘어놓는 대상과 자신이 ‘강가’에서 마주칠 것을 예상하고 있다. 화자는 대상에게 푸념과 넋두리를 한 마디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가 아니라 강가에 가서 직접 말하라는 것이다. 이유는 자신도 강가에 가서 서야 하기 때문이었다. 화자에게도 하고 싶은 말, 풀어내고 싶은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상대방은 화자의 이야기는 들어주지도 않고 자기 문제만 털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강가’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 있는 대나무 숲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는 기도의 자리일 수도 있다. 강가에 가서 직접 내 문제를 털어놓아도 그 행동이 알라딘의 마술램프처럼 바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넉넉한 강이 우리가 토로한 그 사사로운 넋두리를 품고 흘러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적은 부분이지만 내 문제가 정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 구나 그만큼의 삶의 괴로움은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 문제를 풀어놓을 때 듣는 이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내 문제를 마음껏 풀어놓으려면 일단 서로에 대한 충분한 상황적 이해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그래도 휘청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내 삶의 무게까지 얹어버리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