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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랑, 문학/[광장,청춘], [예스31],[ccmer] 칼럼

[예스삼일칼럼] 순종

삶, 사랑, 문학

제목 ; 순종

 

산비탈에 비를 맞으며

소가 한 마리 서 있다

누군가 끌어가기를 기다리며

멍청하게 그냥 서 있다

 

소는 부지런히 많은 논밭을 갈았고

소는 젖으로 많은 아이를 길렀고

소는 고기로 많은 사람을 살찌게 했다

 

도살장으로 가는 트럭 위에

소들이 가득 실려 있다

죽으러 가는지를 알면서도

유순하게 그냥 실려 있다

 

소들은 왜 끌려만 다니는가

소들은 왜 죽으러 가는가

소들은 왜 뿔을 가지고 있는가

-김광규 <소>

 

글을 쓸 때 늘 주의하는 것은 내가 누구를 가르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계속 상기하는 것이다. '~해야 한다'는 식의 정답을 알려줄 만큼 내 삶의 무게가 묵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는 함께 고민하고 함께 깨닫고 서로 위로해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가르치려 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 몇 번이나 글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결국 변명처럼 글 앞에 이런 의미 없는 문단 하나를 더 붙이고 말았다. 부끄럽지만 이렇게라도 글을 시작한다.


몇 년 전 텔레비전을 통해 ‘인민사원(Poeple's Temple)’에 관한 충격적인 다큐멘터리를 보고 예스삼일 지면을 빌려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본다. 1978년, 남미 가이아나 정글에서 아이들을 포함한 900명이 넘는 신도들이 집단자살을 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낙원을 찾아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짐 존슨 목사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교회라며 세운 ‘인민사원’은 처음에는 미국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흑인, 마약중독자, 노숙자 등 도시 빈민 계층 구호 활동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결국 존슨 목사를 메시야로 섬기는 사이비 교회가 되었고, 1000여 명의 신도들은 존슨 목사의 지시에 따라 남미 가이아나 정글로 집단 이주를 하고 존슨 타운을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낙원인 줄 알고 떠난 곳은 사실은 지옥이었다. 인권침해, 강제노력, 성추행 등에 시달리던 이들의 생활이 알려지면서 미국 하원의원과 방송국이 이들을 찾아 가지만, 존슨 목사는 자신의 경호원들에게 지시하여 이들을 총으로 살해하게 된다. 상황에 몰리게 되자 존슨 목사는 신도들에게 독극물을 먹고 진짜 천국으로 가라고 지시를 내린다. 사람들은 총을 들고 있는 경호원들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단체로 독극물을 먹게 되었고 결국 9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이 중에 어린 아이들도 300여 명 포함되어 있다.)

 

이 사건을 '사이비 종교의 광기' 정도로만 여기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비상식적인 지시에 쉽게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중 한 신도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 신도들이 단순히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이아나 정글로 이주하기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 교회가 있을 때, 인민사원의 신도들은 하루 종일 직장에서 일을 했고 (모든 월급을 교회에 헌금) 퇴근 후 저녁 시간은 몇 시간 씩 예배를 드렸고 남는 시간은 교회를 위해 봉사를 했다고 한다. 하루 2시간을 자면 하루 1시간만 자면서 일하는 다른 신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괴로웠을 정도였다고 하니 이들은 그저 성실하고 순종적인 사람들이었을 뿐이었다. 단지 일이 많고 잠을 못 자니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지만 그것이 불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생각은 존슨 목사가 대신 해줬고 자신들은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정도로 과하지 않았을 뿐이지 종교적 지도자들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고 은연중에 배우지 않았는가? 상식적으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일을 종교적 지도자들의 이상한 논리에 휘말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며 끌려 다니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왔던 것이다. 단순히 이단 종교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안에서도 예언하는 은사가 있다는 사람을 찾아가 인생 상담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인가? 자기의 삶을 스스로 기도하고 고민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이며 책임회피가 아닐지.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종교적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소한 문제에까지 개입하는 '지시'와 '복종'의 관계일 때, 그 안에서 과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도 스스로 영적 지도자임을 자처하며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괴문자를 돌리면서 두려움과 공포로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사람들이 있으며 또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분별하지 않고 따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부족한 인간을 향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순종은 위험하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내가 의지하는 영적 지도자가 과연 나에게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익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교회가 일 중심, 과업 중심으로 교회가 흘러가다보면 아무래도 순종적이고 성실한 사람들이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공예배에 참석하고 일주일에 성경을 몇 십 장씩 읽고, 기도 몇 시간씩 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거라고 죄책감을 가지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똑같은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과연 건전한 모습일지? 그래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 자기 삶을 어떻게 돌보고 사랑해야 하는지 도움을 주고 함께 고민해주는 리더들이 더욱 필요하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나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 정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나는 또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어떻게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내 평생 풀어야 할 과제이고 큰 소리로 정답을 외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저 내가 이 문제 앞에서 포기하거나 도망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짐을 놓고 누군가와 함께 생각하고 기도하고 싶기는 해도 다른 사람에게 완전히  떠넘기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