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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랑, 문학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정일근-

마당으로출근하는시인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정일근 (문학사상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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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판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밥상.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밥숟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 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밥상에 앉고 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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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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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향유옥합'의 뜻을 묻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여성들은 결혼을 준비하면서 비싼 향유를 조금씩 사서 옥합에 모아두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마리아는 예수님께 자신의 향유옥합을 깨뜨려 발을 씻겨 드립니다. 마리아는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값 비싼 것을 아낌 없이 예수님께 드린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마리아를 질책합니다. (예전부터 남의 일에 참견 잘 하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그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하루치 임금 1데나리온이라고 하니 300데나리온은 보통 사람들의 1년 치 연봉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지 괜한 짓을 했다고 말이죠.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는 어느 때나 있지만 나는 항상 있는 게 아니란다. 너네들 왜 참견이니. 마리아가 주고 싶다니 주면 된 거지...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려고 그런 거란다."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래도 여전히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겠죠? 정말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발언은 절대 아니었을테니까요.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저소득층부터 단계적으로 해나가자는 주장이 과연  저소득층을 위한 발언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그냥 남 주기 아까워서 억지 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마리아를 질책하는 그 사람들처럼 말이죠... 귀한 향유옥합 깨서 예수님께 드리고 싶은 그 마음을 보지 않고 머리 속에서 돈으로만 환산하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정일근의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을 읽어주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의 둥근 밥상에서는 누구나 귀한 존재들임을... 이 세상이 어머니의 둥근 그 밥상을 닮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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