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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랑, 문학

초심(初心)

바다가보이는교실(창비시선65)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시 > 한국시
지은이 정일근 (창작과비평사,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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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교실 1 -정일근-

너희들 속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구나
저 산에 들에 저절로 돋아나 한 세상을 이룬
유월 푸른 새 잎들처럼, 싱싱한
한 잎 한 잎의 무게로 햇살을 퉁기며
건강한 잎맥으로 돋아나는 길이 여기 있구나
때로는 명분뿐인 이 땅의 민주주의가,
때로는 내 혁명의 빛바랜 꿈이,
칠판에 이마를 기대고 흐느끼는
무명 교사의 삶과 사랑의 노래가
긴 회환의 그림자로 누우며 흔들릴 때마다
너희들은 나를 환히 비추는 거울
나는 바다가 보이는 교실 창가에 서서
너희들 착한 눈망을 속을 조용히 들여다 보노라면
저마다 고운 빛깔과 향기의 이름으로
거듭나는 별, 별들
저 신생의 별들이 살아 비출 우리나라가 보인다
내 아이들아, 너희들 모두의 이름을 불러 손잡으며
걷고 싶어라 첫 새벽 맨발로 걷고 싶어라
너희들 속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고
내가 걷고 걸어 가 닿아야 할 그 나라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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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학에 갔다. 대학에서 처음 맞이했던 생일, 좋은 교사가 되라며 선배가 나에게 정일근의 <바다가 보이는 교실> 시집을 선물해줬다.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시집. 교단에 선지 17년이 지난 지금 그 초심이 나에게 있을까... 고3 학생들을 데리고 문제집을 풀던 중 정일근의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을 읽다가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나를 부끄러워 하는 내가 그런데 부끄럽지 않았다. 부끄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티스토리를 처음 시작하는 마음,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시를 처음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