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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리고 잔소리

뉴스앤조이 인터뷰 (2012.10.04)

전병욱과 20년간 동역한 집사의 고백
[인터뷰] 삼일교회 이수미 집사…"피해자에게 좋은 선배가 못 돼 미안"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2226



  
▲ 이수미 집사는 20년간 전병욱 목사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다. 전 목사가 신반포교회 전도사로 있던 시절부터 삼일교회 담임에서 사임할 때까지 전 과정을 지켜본 셈이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전병욱 목사가 여성 비하 발언을 하면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삼일교회가 대형화되면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분위기가 됐다."


이수미 집사(삼일교회)는 전병욱 목사가 신반포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던 시절부터 함께한 골수 멤버다. 전 목사가 초등부와 대학부를 담당할 때, 이 집사는 주일학교 교사를 맡으며 대학부 활동을 했고, 전 목사가 삼일교회로 청빙되었을 때도 함께 옮겼다. 전 목사와는 담임목사와 교인의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밤늦은 시간에도 전화해 상담하는 '절친' 사이였다.

1993년 11월 삼일교회 담임이 된 전 목사는 승승장구했다. 차세대 청년 목회자로 주목받으며 교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몇몇 사람이 모여 앉아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 교회가 커 가며 전 목사를 둘러싸는 사람이 생겼고, 이 집사와 전 목사의 거리는 멀어졌다. 어쩌다가 한 번 삼일교회로 함께 옮긴 신반포교회 멤버들과 모였지만, 그때마다 전 목사는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늘어놓을 뿐 필요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태였다.

대형 교회 목회자로 강단에 선 전 목사는 설교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성경 몇 구절을 읽고는 본인이 읽은 책 이야기로 말씀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고, 어떻게 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관한 듣기 좋은 이야기들만 쏟아냈다. 그런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아 교회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전 목사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처음 사건이 불거졌을 때, 성추행 사실을 의심하진 않았다. 다만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가 걱정될 뿐이었다. 전 목사는 신반포교회에 있을 때부터 여성 비하나 성희롱 발언을 자주 일삼았다. 이 집사는 그런 전 목사에게 버럭 화를 내며 따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형 교회 목회자와는 일 년에 한 번 대화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전 목사가 여러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벌이는 성추행을 알 길이 없었다.


  
▲ 이 집사는 전병욱 목사 사건 해결에 동참하면서 " 그동안 나 하나 은혜 받는 일만 생각했지, 교회의 정의로움에 무관심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목사님이 한 사람에게만 집중적으로 성적 농담을 던진 게 아니고 여러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나에게도 그런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나며 연결이 된 거다. 지속해서 성추행을 당한 사람 말고, 한두 번 당한 사람을 치면 피해 규모는 어마어마할 거다."

사건이 터진 초반에는 전 목사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피해 여성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 전 목사를 보며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교회가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도 실망스러웠다. 한 장로는 전 목사를 믿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또 다른 장로는 전 목사를 내쫓은 일 때문에 날마다 회개 기도를 한다고 했다. 면직해야할 일을 사임으로 처리하고, 범죄한 목회자에게 전별금을 챙겨 주는 등 교회의 모든 일 처리가 엉망이었다.

이 집사는 '전병욱 목사 사건의 실체를 밝히라'는 공동 요청문 작성에 동참했다. 하지만 공동 요청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대형 교회의 한계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목사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배운 한 청년이 부목사가 그 일에 참여하지 말라고 했다며 자기 이름을 빼 달라고 한 거다.


"너무 놀랐다. 죄의 심각성이 무서웠다. 한 사람의 죄를 해결하지 못해서 너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았다. 피해 여성이 겪은 고통뿐 아니라 교인끼리 서로 등을 돌려야 했다. 한 사람의 죄를 뽑아내려 할 때, 한국교회 뿌리 전체가 얽혀 있었다. 그동안 나 하나 은혜 받는 일만 생각했지, 교회의 정의로움에 무관심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집사는 피해자를 생각할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왜 나는 몰랐나", "왜 나는 피해 자매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지 못했나"라는 생각 때문에 늘 미안했다. 정작 죄책감을 느껴야 할 사람은 잘살고 있는데, 이 집사는 괴롭기만 했다.

전 목사에게 '할 말은 하자'고 배운 이 집사는 '전병욱목사성범죄기독교공동대책위(김주연·박주연·백종국 공동대표)' 활동에 참여하며 공개적으로 전 목사의 회개를 촉구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전 목사 사모와 가족에게는 미안했지만 전 목사를 정죄하거나 저주하는 마음은 아니었기에 이해해 주길 바랐다.

이 집사는 전 목사에게 정당한 징계가 내려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 갈 계획이다. 전 목사 주변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가진 것 하나 없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날이 오길 바라면서 말이다.


"내 손으로 결과를 낳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과 없는 일이 얼마나 많나.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모른다. 정의롭지 못한 일에 무관심하지 않고 같이 하는 게 중요하기에 노력할 뿐이다. 당장 해결되지 않더라도 지금의 활동이 선한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한다."

-정재원 기자-